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5-03 23:56:02 | 조회수 : 1423 |
---|
베르사이유의 당구
맞는 말이다. 당구는 예전의 그 당구가 아니다.
이제는 당구인이라면 누구라도 ‘완전 딴판이 되었다.’고 우길 만하다.
당구가 얼마나 달라졌는고 하니, 그저 묵은 때를 조금 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러다가 내일 모레만 지나면 번쩍번쩍 광까지 나겠다 싶을 기세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렇게 달라진 걸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이 자칫 당구를 깔보는 말이라도 꺼내려는 차에는,
두 눈을 부라리고 침을 튀겨가며 반발할 준비마저 되어 있다.
당구가 달라졌다는 근거로 꺼낼 사례들은 이미 찰랑찰랑 차고 넘치며,
그런 무식한 자에게는 얼굴 붉히도록 면박까지 줘도 될 만큼이나
당구판은 빳빳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따져보자면 당구처럼 시작부터 폼나고 광났던 종목이 별로 없었다.
격투기나 창칼쓰기는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었으며,
골프도 스코틀랜드 해변의 양치기 목동들이 하던 것이었다.
종목의 출생이 귀족놀이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당구와 동급으로는
후하게 쳐줘야 테니스 정도가 있을게다.
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여기에도 선을 긋자면,
그런 테니스조차도 땡볕에 나가 살을 그을리고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십중팔구는 귀족 중에서도 중치 이하의 귀족들이나
뒤뜰에 모여서 하던 게임이었을 것이다.
흔히 보이스카웃 문양이라 부르는 아담사의 로고,
사실은 프랑스 부르봉왕가의 상징.
프랑스의 가장 말단 변두리 동네인 피레네산맥 기슭에 살던 촌사람들 바스크족.
베레모라는 특이한 모자를 쓰며 아기를 낳을 때 남편이 옆에서 출산하는 흉내를 내던
이 시골뜨기의 후예가 구교-신교가 충돌했던 위그노전쟁을 마무리하고 파리에 입성했으니,
그가 세운 부르봉 왕가는
독일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달리 군사력을 시골귀족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왕이 독점하는 길을 택했다.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어야 외세를 딱딱 물리칠 수 있다는 구실을 댔다는데,
속에 품은 꿍꿍이가 훤히 보이기는 하지만 일단 논리적으로 말은 되는 거 같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프랑스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독일과 영판 다른 식으로 나라가 돌아가게 되었다.
이름으로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일 뿐이고
실제로는 비실비실 별로 힘을 쓸 수 없었던 독일에서는
귀족들이 팔자 좋게 그저 자기 동네에서 왕초로 눌러 살며 대대로 떵떵거릴 수 있었지만,
왕이 혼자 독점하고 군사력을 휘두르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귀족들이 독일에서처럼 마음 편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떡해서건 왕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리며 눈도장을 찍어두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언제 영지를 잃고 자리에서 몰려날지 모르니까.
이렇게 해서 프랑스의 지방 귀족들은 모두 왕 옆으로 모여들게 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곳곳에서 방귀 좀 뀝네 하며 거들먹거리던 잘난 인물들이
무려 1,000명이나 베르사이유 궁전에 들락거리게 되면서
프랑스에는 특유의 고급문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는 건 많고, 할 일은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궁전에 바글바글 모여들었으니,
한편으로는 자기들끼리 소일거리의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냈고,
또 한편으로는 왕족들도 나서서 귀족들이 재미있어 할 소일거리들을 만들어줬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전시회와 연회가 베풀어졌으며 무도회와 공연도 줄지어 열렸다.
물론 그 소일거리들의 첫째는 그거였다. 섹스 그리고 요리. 프랑스 사람들은 아무튼......
궁전은 자유연애의 공간이었으며
연애 상대로 유부남인지 유부녀인지 가리는 것은 정말 촌스러운 것이었다.
이미 십자군전쟁을 겪으면서 정절의 개념은 흐려질대로 흐려진 상태였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애를 둘 셋 낳은 유부녀와 춤추고 정분나서 살을 섞는 건 뒷담화의 소재도 되지 못했다.
궁전의 음식도 프랑스 고급문화의 한 축이 되었다.
음식을 양으로 먹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천하고 천한 짓이었다.
모든 음식은 가장 고급스러워야 했으며 최고의 재료여야 했고,
재료의 맛을 가장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도 격식을 지키면서 순서대로.
섹스와 음식 다음으로 귀족들이 만들어 즐긴 것들이 다양한 놀이와 게임들이었는데,
현대적인 당구의 유래도 십중팔구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매우 강하게 추정하는 바이다.
시기적으로 봐도 그렇고 여건으로 봐도 그렇다.
궁전의 안쪽 그리고 바깥쪽
베르사이유 궁전은 살아 있는 신 태양왕이 군림하는 곳이자,
시저 시절의 로마제국보다 더 강력한 절대권력이 꿈틀대던 곳이었다.
심지어 궁전에 전시된 온갖 그리스, 로마 신들의 조각상 얼굴은
모두 루이14세의 얼굴로 통일되어 있었다.
이렇게 귀족들을 압도했던 베르사이유 궁전 건물의 안과 밖에는 분명한 구별이 있었다.
궁전 안에서는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장면들이 펼쳐졌었다.
벽에는 가장 귀하고 비싼 그림들이 걸렸고,
탁자에는 먹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리는 산해진미의 요리가 올라왔으며,
세상에서 가장 큰 보석들이 전시되었고, 애인과 침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화려하고 장엄한 공간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하며 돈내기를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틀 위에 공을 올려놓고 굴리거나 치며 놀았다,
그 중에 제일 고귀한 신분을 가진 자들은 벼룩에게 작은 금관을 씌워 놓고
행진이나 경주를 시키면서 돋보기 렌즈로 그 장면을 감상하며 내기를 걸었었다.
그러나 궁전의 건물 밖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궁전 안에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왕족도 귀족도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궁전 밖 나무들 사이에 들어가 서로 마주보며 아랫도리를 까고 용변을 봤다.
궁전 밖 숲은 그런 장소였다.
안에서 밤새 연회와 섹스를 즐긴 후 새벽이 되어 기력이 떨어지면
줄줄이 궁전 밖으로 나와서 방금 도살한 소의 피를 나눠 마시며 원기를 채웠다.
출신과 끗발이 밀려서 궁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하급귀족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소일거리를 찾았다.
궁전 건물 안과 밖은 이렇게 다른 곳이었다.
궁전 건물의 안쪽이 귀족 중에서도 끗발 제일 좋은 자들의 공간으로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우며 즐거운 것으로 채워진 곳이라면,
궁전 건물의 바깥은 그들보다 덜 고귀한 자들의 공간이면서
찌꺼기를 배설하고 다시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당구는 궁전 안에서 즐기던 놀이
여기서 다시 눈길이 가는 대목이,
똑같이 고귀한 자들의 놀이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당구는 <궁전 안에서> 즐긴 놀이고, 테니스는 <궁전 밖에서> 즐긴 놀이라는 점이다.
당구와 테니스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을 고려하고,
두 종목이 태어나던 당시 상황들을 짚어 볼 때,
당구와 테니스를 각각 즐기는 자들의 레벨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으리라는,
아니 사실은 심지어 서로 인사나 대화조차 나누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매우 합리적인 추론에 이르게 된다.
이 추측이 과연 무리요 궤변이요 억지일 뿐일까?
물론 필자가 테니스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당구에는 폭 빠져있는 당구환자 중의 하나인 건 맞다.
그래서 이게 그저 중증 당구환자의 주관이 잔뜩 들어간 추측......에 불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면 그러라지.
그에 상관없이 필자는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바로 이것을.
“당구는 애초 시작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고급스럽게 탄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