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톱니바퀴, 선수의 연습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8-03 11:17:50 조회수 : 1170
부산시장배가 열리기 1주일 전.  3일 연속으로 김재근선수가 연습하는 장면을 봤다.

그 구장에 다닌지 몇년이 흘렀지만, 나는 김재근선수가 시합을 앞두고 그렇게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옛 말에 덕담은 할수록 좋은 것이라 했던가... 나는 김재근선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연습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군요.  이미 정상급 실력이시니 지금처럼 연습하시면 세계대회도 곧 우승하실겁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마치 내가 무슨 '신내림 받은 사람'이기라도 한 듯이,  아주 우연히도 바로 그 주에 김재근선수는 부산시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무려 6년만에 맛보는 우승이라고...   연습은 이렇게 좋은 것이다.  뒷맛까지 아주 달달하다.  



몇년 전 당구계의 이모저모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선수들의 연습하는 모습이었다.  평상시에도 그리고 시합이 임박했을 때에도, 내가 본 대부분의 선수들은 게임만 칠 뿐 연습은 거의 하지 않았었고, 그중에 몇몇 간간이 연습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도 연습의 체계라거나 피드백 프로그램 없이 그저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또는 무작위로 연습공을 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부하지 않을 때에는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쑥쑥 오르게 마련.  대다수가 훈련다운 훈련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얼굴 알고 친분이 생긴 선수들을 가만히 지켜보자니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골프선수들은 ~~~~~~로 연습하니 당신도....'라는 취지로 말을 건네 봤지만, 주제넘는 조언에 대해 돌아오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아무리 골프의 전문가라지만  당구에서는 그저 초중급자에 불과한 사람이 마치 당구코치라도 되는 듯이 나선다....였을 테니까.

선수들이 연습을 거의 하지 않거나 또는 연습하더라도 아주 비효율적인 모습은 상당한 부분에서 선수들 개개인의 허술함 또는 게으름 따위에 원인이 있는게 아니라, 오늘의 당구계 현실 자체가  '선수들에게 골프 수준의 치밀한 연습이 필요 없는 상황'인 것에 원인이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상황 자체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는 법.  그러니 상황이 다소 열악한 점은 부실한 연습에 대해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감히 정리하여 결론을 내리자면,  
연습하지 않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며,  또한 그 종목의 발전을 스스로 가로막는 장벽이 될 뿐이다.  



골프선수들이 가장 많이 연습하는 것은 '
1미터 퍼팅'이다.  1미터~2미터 사이의 퍼팅에 대해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는 골프선수는 퍼팅의 성공 그 자체로도 성적에 직결되는 능력을 가진 것이지만 내막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1미터 퍼팅이 골프 전체에 미치는 위력은 수십배에 이른다.

1~2미터 퍼팅을 확실히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롱퍼팅이나 그린 주변의 어프로치에서 반드시 홀 옆에 붙이려고 아둥바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롱퍼팅이나 어프로치에서 긴장할 이유도 없고  황당한 실수가 나올 일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롱퍼팅이나 어프로치가 남아도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은 아이언 샷에서 꼭 홀 가까이 보내려고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홀에서 좀 멀리 떨어져도 아무 문제 없이 안전하게 파세이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린 생김새에 따라 홀을 직접 겨냥할 수도 있고 또는 홀에서 조금 멀더라도 위험하지 않은 곳으로 보내는 선택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1~2미터 퍼팅에 자신이 있는 선수는 아이언 샷에서도 여유있게 작전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면 아이언 샷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티샷도 마찬가지로 여유있게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도 마찬가지다. 이번 홀에서 꼭 승부를 걸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침착하게 기다리며 18홀 전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라운드의 운영전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짧은 거리의 퍼팅에 대한 확실한 실력은 그 홀의 파퍼팅 하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선수의 골프 전체에 대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는 게 드러난다.

사정이 이러하니 '
1미터 퍼팅을 연습하지 않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는 말은 그저 말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괜한 과장이나 독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안에 무서운 진실을 가득 담고 있는 엄중한 선언이 된다.  



골프의 1미터 퍼팅에 해당하는 것을 3쿠션에서 꼽자면 제각돌리기나 뒤돌려치기 쯤 될 것이다.

3쿠션 선수 중에서 '뒤돌려치기를 어떻게 하면 다음 공의 배치도 좋아지는지' 모르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것을 매일 매일 지독하게 연습함으로써, 시합에서 한 번이라도 뒤돌려치기가 나오면 언제라도 최소 10득점 이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훈련하는 당구선수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골프선수가 연습하는 기준으로 비유하자면,  뒤돌려치기가 한 번만 나오면 그 시합을 끝낼 수 있게 만들려는 마음으로 연습해야 선수다운 연습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타이거 우즈는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그 시절에도 매일매일 2미터 퍼팅을 연이어 200개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다. 우즈가 150개를 넘어서 200개를 향할 때의 심정을 상상해 보자. '이제 ( )번만 성공하면 이 지루한 연습을 끝낼 수 있다'는 잡념이 스며들고, 그러면서 몸의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거나 경직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걸 잘 넘기며 계속 성공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피로도 점점 쌓인다. 이제는 정신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근육의 균형상태가 즉각적으로 위협받는 순간들도 찾아온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실제 시합에서 그것도 중요한 고비에서 만나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선수는 바로 그 순간들에 대비해서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골프선수가 연습하는 내용과  당구선수가 연습하는 내용도,  두 종목의 우승상금액 차이와 거의 비례하는 듯 하다.  꽤 후하게 쳐도 20 : 1  또는 15 : 1 ....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우승상금이 훨씬 커진다면 선수들도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치열하고 엄격하게 훈련에 돌입할 것이다. 선수들의 연습하는 모습에 대해 선수들 탓만 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어차피 톱니가 서로 맞물려서 함께 돌아가지 않고는 기계를 제대로 가동할 수 없다.  한편으로 당구의 산업적 틀을 강화하는 데에 힘써야 하겠지만,  또 다른 하나의 톱니바퀴인 선수들도 지금까지의 자세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더 높은 기량을 갖출 수 있도록 스스로 채근하는 계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당구계가 발전하는 데에,  선수 측에서 담당해야 할 도약을 기대해 본다.